호 상허(尙虛)·상허당주인(尙虛堂主人). 강원도 철원(鐵原)에서 출생하였다. 휘문고보를 나와 일본 조치[上智]대학에 수학하였으며, 《시대일보(時代日報)》에 《오몽녀(五夢女)》를 발표하면서 문단에 등단하였다. 구인회(九人會)에 가담하였고, 이후 이화여전 강사, 조선중앙일보(朝鮮中央日報) 학예부장 등을 역임하였다. 1930년대부터 본격적인 작품활동을 시작하였으며, 《가마귀》 《달밤》 《복덕방》 등의 단편소설은 인물과 성격의 차분한 내관적(內觀的) 묘사로 토착적인 생활을 부각시켜, 완결된 구성법과 함께 한국현대 소설의 기법적인 바탕을 이룩한 것으로 평가되었다. 작중 인물들은 회의적·감상적·패배적 성격으로 부각되어 작품 전체가 허무와 서정에 깊이 침윤되었지만, 때로는 그 속에서 현실과 밀착된 시대정신에의 추구를 지향하기도 했다.
《문장(文章)》지를 주관하다가 8·15광복 직전 철원에서 칩거하였으며, 광복 후에는 ‘조선문학가동맹’에 포섭되어 활약하다가 월북하였다. 그의 단편 《해방전후(解放前後)》(1946)에서 이러한 문학적 변모를 확인할 수 있다. 작품에는 앞에 든 것 외에 소설집 《구원(久遠)의 여상(女像)》 《딸 삼형제》 《사상(思想)》 《해방전후》 등이 있으며, 문장론 《문장강화(文章講話)》가 있다.
이태준 연보
1904년 | 11월 4일 강원도 철원군 묘장면 진명리 출생. 부친 이창하(李昌夏), 모친 순흥 안씨의 1남 2녀 중 장남. 집안은 장기 이씨(長? 李氏) 용담파(龍潭派). (?장기이씨 가승(家乘)?에 의하면 상허의 본명은 규태(奎泰). 부친의 정실 은 한양 조씨이고 적자로 규덕(奎悳)이 있음). 호는 상허(尙虛) · 상허당주인(尙虛堂主人). 父 이창하(1876~1909) 의 字는 문규(文奎), 호는 매헌(梅軒). 철원공립보통학교 교원, 덕원감리서 주사를 역임한 개화파적 지식인. |
1909년 | 망명하는 아버지를 따라 러시아 땅 해삼위(블라디보스톡)로 이주. 8월 부친의 사망으로 귀국하던 중 함경북도 배기미(梨津)에 정착. 서당에서 한문 수학. |
1912년 | 어머니 별세로 고아가 됨. 외조모 손에 이끌려 고향 철원 용담으로 귀향하여 친척집에 맡겨짐. |
1915년 | 안협의 오촌집에 입양. 다시 용담으로 돌아와 오촌 이용하(李龍夏)의 집에 기거함. 철원 사립봉명학교에 입학. |
1918년 | 3월에 봉명학교를 우등으로 졸업. 철원 읍내 간이농업학교에 입학하나 한 달 후 가출하여 여러 곳을 방랑하다 원산 등지에서 2년간 객주집 사환 등의 일을 하며 2년여를 보냄. 외조모가 찾아와 보살핌. 이때 문학서적 탐 독. 이후 중국 안동현까지 인척 아저씨를 찾아갔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고 경성으로 옴. |
1920년 | 4월 배재학당 보결생 모집에 응시하여 합격하나 입학금 마련이 어려워 등록하지 못함. 낮에는 상점 점원으로 일하며 밤에는 야학에 나가 공부함. |
1921년 | 4월 휘문고등보통학교에 입학. 고학생으로 비교적 우수한 성적을 받음. 이 때 상급반에 정지용·박종화, 하급반 에 박노갑, 스승으로 가람 이병기가 있었음. 습작을 시작함. |
1924년 | [휘문]의 학예부장으로 활동. 동화 [물고기 이약이] 등 6편의 글을 [휘문] 제2호에 발표함. 6월 13일에 동맹휴교의 주모자로 지적되어 5년제 과정 중 4학년 1학기에 퇴학. 이 해 가을 휘문고보 친구인 김연만의 도움으로 유학길에 오름. |
1925년 | 일본에서 단편소설 [오몽녀(五夢女)]를 [조선문단]에 투고하여 입선, [시대일보](7월 13일)에 발표하며 등단함. |
1926년 | 4월 동경 上智大學 예과에 입학. 신문·우유 배달 등을 하며 ‘공기만을 먹고사는’ 매우 궁핍한 생활을 함. 동경에서 [반도산업] 발행. 이 때 나도향, 화가 김용준,김지원 등과 교유. |
1927년 | 11월 학교를 중퇴하고 귀국함. 각 신문사와 모교를 방문하여 일자리를 구하나 취업난에 직면함. |
1929년 | 개벽사에 기자로 입사. [학생](1929.3~10) 창간 때부터 책임자. [신생] 등의 잡지 편집에 관여함. [어린이] 지에 소년물과 掌篇을 다수 발표함. 9월 백산 안희제의 사장 취임에 맞춰 [중외일보]로 자리를 옮김. 사회부에서 3개월 근무 후 학예부로 옮김. |
1930년 | 이화여전 음악과를 갓 졸업한 이순옥(李順玉)과 결혼. |
1931년 | [중외일보] (6.19 종간)기자로 있다가, 신문 폐간과 함께 개제된 [중앙일보](사장 여운형) 학예부 기자가 됨. 장녀 소명(小明) 태어 남. 경성부 서대문정 2정목 7의 3 다호에 거주. |
1932년 | 이화여전(梨專1932~1937)·이화보육학교(梨保)·경성보육학교(京保) 등 학교에 출강하며 작문을 가르침. 장남 유백(有白) 태어남. |
1933년 | 박태원·이효석 등과 함께 ‘구인회(九人會)’를 조직. 1933년 3월 7일 [중앙일보]에서 개제된 [조선중앙일보] 학예부장에 임명됨.
경성부 성북정 248번지로 이사. 이후 월북 전까지 이곳에서 거주함. |
1934년 | 차녀 소남(小楠) 태어남. |
1935년 | 1월, 8월 2회에 걸쳐 표준어사정위원회 전형위원, 기록 담당. 조선중앙일보를 퇴사, 창작에 몰두함. |
1936년 | 차남 유진(有進) 태어남. |
1937년 | [五夢女]가 나운규에 의해 영화화됨(주연 윤봉춘, 노재신. 이 작품이 春史의 마지막 작품임). |
1938년 | 만주 지방 여행. |
1939년 | [문장(文章)]지 편집자 겸 신인 작품의 심사를 맡음 (임옥인·최태응·곽하신 등이 추천됨). 이후 황군위문작가단, 조선문인협회 등의 단체에서 활동. |
1940년 | 삼녀 소현(小賢) 태어남. |
1941년 | 제2회 조선예술상 받음(1회는 春園이 수상). |
1943년 | 강원도 철원 안협으로 낙향. 해방 전까지 이곳에서 칩거함. |
1945년 | 문화건설중앙협의회, 문학가동맹, 남조선민전 등의 조직에 참여. 문학가동맹 부위원장, [현대일보] 주간 등을 역임. |
1946년 | 2월부터 민주주의 민족전선 문화부장으로 활동. 남조선 조소문화협회 이사. 7월~8월 상순 사이에 월북. [해방전후]로 제1회 해방문학상 수상. 장남 휘문중학 입학. 8월 10일부터 10월 17일까지 ‘방소문화사절단’의 일원으로 소련의 모스크바, 레닌그라드 등지를 여행. |
1947년 | 5월 소련 여행기인 [쏘련기행]이 남쪽에서 출간됨. |
1948년 | 8·15 북조선최고인민회의 표창장을 받음. |
1949년 | 북조선문학예술총동맹 부위원장, 국가학위수여위원회 문학분과 심사위원이 됨. 단편 [호랑이 할머니] 발표. 이 작품은 해방 후 북한에서 발표된 ‘최고의 걸작’으로 평가됨. |
1950년 | 6·25 동란 중 낙동강 전선까지 종군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서울에 들러 문학동맹 사람들을 모아놓고 전과 보고 연설을 함. 10월 중순 평양수복 때 ‘문예총’은 강계로 소개(疏開)하였는데 이태준은 따라가지 않고 평양 시외에 숨어 있으면서 은밀히 귀순을 모색하였다고 함. 12월 국방군의 북진을 따라 문화계 인사들이 이태준을 구출하려 했으나 실패함. |
1952년 | 남로당과 함께 숙청될 위기에서 소련파 기석복(奇石福)의 후원으로 제외됨. |
1954년 | 3개월간의 사상검토 작업 중 과거를 추궁당함. |
1956년 | 소련파의 몰락과 더불어 과거 ‘구인회’ 활동과 사상성을 이유로 1월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상무회의 결의로 임화, 김남천과 함께 가혹한 비판을 받음. 2월 ‘평양시당 관할 문학예술부 열성자대회’에서 한설야에 의해 비 판, 숙청당함. |
1957년 | 함흥노동신문사 교정원으로 배치됨. |
1958년 | 함흥 콘크리트 블록 공장의 파고철 수집 노동자로 배치됨. |
1964년 | 중앙당 문화부 창작 제1실 전속작가로 복귀함. |
1969년 | 김진계의 구술기록([조국], 현장문학사, 1991(재판))에 의하면, 1월경 강원도 장동탄광 노동자 지구에서 사회보 장으로 부부가 함께 살고 있었다고 함. 이후 연도 미상이나 사망한 것으로 알려짐(북한의 원로 문학평론가 장현준과의 인터뷰 기사 - [한겨레신문], 1991. 12. 19). 일설에는 1953년 남로당파의 숙청이 끝난 가을 자강도 산 간 협동농장에서 막노동을 하다가 1960년대 초 산간 협동농장에서 병사한 것으로 알려짐(강상호, [내가 치른 북한 숙청], [중앙일보], 1993. 6. 7) |
작품 연보
년월일 | 종류 | 작품제목 | 출전 | 비고 |
1924년 6월 | 童話 | 물고기 이약이 | 徽文 | |
1925년 7월 13일 | 단편 | 五夢女 | 시대일보 | |
1926년 1월 | 단편 | 구장의 처 | 반도산업(신발굴) | |
1927년 8월 | 평론 | 稻香생각 몇가지 | 현대평론 | |
1928년 7월 11,12일 | 수필 | 백일몽(상, 하) | 동아일보 | |
1929년 1월 | 童話 | 어린 守門將 | 어린이 | |
1929년 1월 | 수필 | 喫茶와 握手 | 별건곤 | |
1929년 2월 | 童話 | 불상한 少年美術家 | 어린이 | |
1929년 3월 | 단편 | 幸福 | 학생 | |
1929년 3월 19일 | 掌篇 | 모던껄의 晩餐 | 조선일보 | *改題 |
1929년 4월 | 수필 | 야단들이다 | 학생 | |
1929년 4월 | 수필 | 추억(중학시대) | 학생 | |
1929년 5월 | 童話 | 슬픈 명일 秋夕 | 어린이 | |
1929년 5월 | 단편 | 그림자 | 槿友 | *창간호 |
1929년 5월 10~12일 | 단편 | 溫室花草 | 조선일보 | |
1929년 6월 | 단편 | 누이 | 문예공론 | |
1929년 6월 | 童話 | 쓸쓸한 밤길 | 어린이 | |
1929년 6월 | 수필 | 도보 삼천리 | 학생 | |
1929년 7월 | 수필 | 소 | 신생 | |
1929년 7,8월(합병호) | 童話 | 불상한 三兄弟 | 어린이 | |
1929년 8월 | 수필 | 여름 | 학생 | |
1929년 9월 | 희곡 | 엇던 날의 뻬―토벤 | 학생 | |
1929년 10월 | 수필 | 幽靈의 鍾路, 街頭漫筆 | 별건곤 | |
1930년 1월 | 수필 | 청춘고백 공상시대-나폴레온 시대 이하 | 학생 | |
1930년 1월 | 수필 | 오십전 銀貨 | 신소설 | |
1930년 1월 | 掌篇 | 百科全書의 新意義 | 신소설 | *改題 |
1930년 1월 | 童話 | 눈물의 入學 | 어린이 | |
1930년 1월 | 단편 | 妓生 山月이 | 별건곤 | *改題 |
1930년 2월 | 수필 | 路上 | 신생 | |
1930년 3월 | 수필 | 張主事不知 | 별건곤 | |
1930년 3월 | 수필 | 봄비소리 | 신생 | |
1930년 4월 | 수필 | 복사꽃 | 학생 | |
1930년 4월 20,21일 | 합평회 | 제1회 동미전 합평기(상, 중) | 중외일보 | |
1930년 5월 | 掌篇 | 恩姬夫妻 | 신소설 | |
1930년 5월 | 평론 | 朝鮮의 文學評論은 어디로 歸結될가?―問題漠然 | 대조3 | |
1930년 5월 | 설문 | 내가 본 나-명사의 자아관 | 별건곤 | |
1930년 6월 | 童話 | 6월의 하누님 | 어린이 | |
1930년 6월 | 수필 | 신록 | 별건곤 | |
1930년 6월 | 수필 | 학생의 추억 P군 생각 | 학생 | |
1930년 7월 | 수필 | 惡伴侶 | 신민 | |
1930년 7월 | 수필 | 여름날의 옛긔역-무지개 | 어린이 | |
1930년 8월 | 수필 | 귀뚜라미 | 별건곤 | |
1930년 8월 | 童話 | 과꽃 | 어린이 | |
1930년 8월 | 수필 | 모기장 속 | 신민 | |
1930년 9월 | 단편 | 어떤 날 새벽 | 신소설 | |
1930년 10월 22~31일 | 평론 | 제10회 조선서화협전을 보고1~8 | 동아일보 | |
1930년 11월 | 수필 | 가을 거리의 남녀 풍경 | 별건곤 | |
1930년 11월 | 童話 | 외로운 아이 | 어린이 | |
1930년 12월 | 수필 | 눈 온 아침 | 신생 | |
1931년 1월 | 수필 | 두 강도의 면영과 직업적 냉정 문제 | 철필 | |
1931년 2월 | 童話 | 몰라쟁이 엄마 | 어린이 | |
1931년 2월 1~5일 | 평론 | 詩人·冥想·豫言〈自然과 그 禮讚者〉 | 매일신보 | |
1931년 3월 | 수필 | 봄날이외다 | 신생 | |
1931년 3월 | 수필 | 삼월과 인생 | 혜성 | |
1931년 3~5월 | 평론 | 學生連作小說槪評 | 학생2, 3~5 | |
1931년 3월 ~ 1932년 8월 | 長篇 | 久遠의 如像 | 신여성 | |
1931년 4월 | 수필 | 봄은 어데 오나! | 신여성 | |
1931년 4월 6일 | 단편 | 結婚의 惡魔性 | 혜성 | *改題 |
1931년 4월 21~29일 | 단편 | 故鄕 | 동아일보 | |
1931년 6월 | 童話 | 6월과 구름 | 어린이 | |
1931년 6월 | 수필 | 산과 추억 | 신생 | |
1931년 7월 | 수필 | 복덕방 영감 | 동광 | |
1931년 7월 | 단편 | 불도나지 안엇소, 도적도 나지안엇소, 아무일도 없소 | 동광 | |
1931년 10월 | 수필 | 오오 청춘 둥지도 없이 | 동광 | |
1931년 12월 | 수필 | 낙서 | 동광 | |
1932년 1월 | 수필 | 독서소론 | 신생 | |
1932년 1월 | 수필 | 낙서 | 신생 | |
1932년 1월 28일 | 평론 | 사라지는 서울의 시 | 조선일보 | |
1932년 2월 | 평론 | 讀書小論 | 신생38 | |
1932년 2월 | 수필 | 참새생각 | 혜성 | |
1932년 3월 | 수필 | 나의 고아시대 | 白岳 | |
1932년 4월 | 단편 | 봄 | 東方評論 | |
1932년 4월 | 단편 | 不遇先生 | 삼천리 | |
1932년 4월 | 수필 | 낙서 | 신생 | |
1932년 5월 | 수필 | 낙서 | 신생 | |
1932년 5월 | 掌篇 | 天使의 憤怒 | 신동아 | |
1932년 6월 | 수필 | 낙서 | 신생 | |
1932년 7월 | 단편 | 失樂園 이야기 | 동방평론 | |
1932년 7월 | 童話 | 슬퍼하는 나무 | 어린이 | |
1932년 7월 8일 | 수필 | 물 | 신생 | |
1932년 9월 | 수필 | 龍潭 이야기 | 신동아 | |
1932년 9월 | 단편 | 서글픈 이야기 | 신동아 | |
1932년 9월 | 수필 | 無識 | 한글 | |
1932년 10월 | 수필 | 낙서(밤) | 신생 | |
1932년 10월 | 단편 | 코스모스 이야기 | 梨花 | |
1932년 10월 | 수필 | 편지―나의 존경하는 S군에게 | 여인 | |
1932년 11월 | 수필 | 돈과 淸閑 | 신생 | |
1932년 12월 3일 | 수필 | 낙서(목욕과 이발) | 신생 | |
1932년 12월 | 수필 | 남행열차 | 신동아 | |
1932년 12월 | 앙케트 | 나의 총결산 | 신동아 | |
1933년 1월 | 단편 | 슬픈 勝利者 | 신가정 | |
1933년 1월 | 수필 | 隨想二題 | 중앙 | |
1933년 2월 | 수필 | 낙서 | 신생 | |
1933년 3월 | 수필 | 봄글 | 신동아 | |
1933년 3월 | 단편 | 꽃나무는 심어놓고 | 신동아 | |
1933년 3월 | 수필 | 그들의 얼굴 우에서 | 신가정 | |
1933년 3월 | 수필 | 못본이 상상기 | 신가정 | |
1933년 3월 | 수필 | 낙서 | 신생 | |
1933년 4월 | 수필 | 조고만 객주ㅅ집 사환 | 신가정 | |
1933년 4월 | 수필 | 동경에 있는 S누이에게 | 신가정 | |
1933년 4월 ~ 1934년 4월 | 長篇 | 法은 그러치만 | 신여성 | |
1933년 5월 | 수필 | 내게는 웨 어머니가 없나 | 신가정 | |
1933년 6월 | 수필 | 낙화의 적막 | 신가정 | |
1933년 7월 | 앙케트 | 돌연 눈이 먼다면 | 신동아 | |
1933년 7월 23일 | 掌篇 | 미어기 | 동아일보 | |
1933년 8월 22~26일 | 평론 | 투르게―넵흐와 나 | 조선일보 | |
1933년 8월 25일 ~ 1934년 2월 23일 | 長篇 | 第二의 運命 | 조선중앙일보 | |
1933년 8월 31일 ~ 9월 1일 | 평론 | 藝術의 東西 | 조선일보 | |
1933년 8월 | 수필 | 무서운 바다 | 신가정 | |
1933년 9월 | 단편 | 아담의 後裔 | 신동아 | |
1933년 10월 | 단편 | 어떤 젊은 어미 | 신가정 | |
1933년 10월 | 掌篇 | 코가 복숭아처럼 붉은 여자 | 조선문학 | |
1933년 10월 | 掌篇 | 馬夫와 敎授 | 學燈 | |
1933년 10월 | 평론 | 신문소설과 작자심경-「第二의 運命」을 쓰면서 | 삼천리 | |
1933년 10월 14일 | 평론 | 評家여 좀더 謙遜하여라 | 조선일보 | |
1933년 11월 | 단편 | 달밤 | 중앙 | |
1933년 12월 | 앙케트 | 송년사 | 신가정 | |
1933년 12월 6일 | 평론 | ‘無知한 讀者’라는 것 | 동아일보 | |
1934년 1월 1일 | 평론 | 作品과 生活이 競走中 | 조선일보 | |
1934년 1월 | 앙케트 | 신가정 | ||
1934년 1월 | 희곡 | 어머니 | 중앙 | |
1934년 2~7월 | 중편 | 박물장사 늙은이 | 신가정 | |
1934년 3월 | 掌篇 | 氷點下의 憂鬱 | 學燈 | |
1934년 3월 | 단편 | 촌띄기 | 農民旬報 | |
1934년 3월 9~30일 | 평론 | 短篇과 掌篇, 環境에 適應하는 形態로서 | 동아일보 | |
1934년 3월 25일 | 평론 | 박화성의 [白花] | 조선중앙일보 | |
1934년 5월 | 수필 | 인생과 연애 | 중앙 | |
1934년 5월 | 수필 | 만년필 | 학등 | |
1934년 4월 | 수필 | 강아지 | 신가정 | |
1934년 5월 15일 ~ 1935년 3월 30일 | 長篇 | 不滅의 喊聲 | 조선중앙일보 | |
1934년 6월 | 수필 | 음악과 가정 | 중앙 | |
1934년 6월 ~ 1935년 1월 | 평론 | 글짓는 법 A.B.C―처음 글쓰는 이들을 위하야 | 중앙8~15 | |
1934년 6월 11일 | 수필 | 태극선 | 조선중앙일보 | |
1934년 7월 | 단편집 | 달밤 | 한성도서 | |
1934년 9월 | 단편 | 點景 | 중앙 | |
1934년 10월 | 수필 | 고독 | 신가정 | |
1934년 10월 | 수필 | 파초 | 청년조선 | |
1934년 11월 | 단편 | 어둠 | 개벽 | *改題 |
1934년 12월 13~19일 | 수필 | 旅情의 하로 | 조선중앙일보 | |
1935년 1월 | 수필 | 청춘고백―공상시대 | 학생 | |
1935년 3월 | 중편 | 愛慾의 禁獵區 | 중앙 | |
1935년 3월 14일 | 평론 | 金東仁氏의 短篇集 "감자" | 조선중앙일보 | |
1935년 4월 | 수필 | 복사꽃 | 학생 | |
1935년 4월 | 수필 | P군 생각―학창의 추억 | 학생 | |
1935년 4월 | 수필 | 신도 | 학등 | |
1935년 5월 | 평론 | 김문집 저 『批評文學』에 대한 각계의 一家見 | 청색지 | |
1935년 5월 26일 ~ 1936년 1월 20일 | 長篇 | 聖母 | 조선중앙일보 | |
1935년 6월 | 평론 | 小說과 文章 | 사해공론 | |
1935년 6월 | 평론 | 내가 존경하는 현대조선의 작가와 외국인에게 자랑할 작품 | 중앙 | |
1935년 7월 2일 | 수필 | 閑日―夏日散話 | 조선중앙일보 | |
1935년 8월 11~12일 | 평론 | 九人會에 대한 難解·其他 | 조선중앙일보 | |
1935년 9월 | 수필 | 집 이야기 | 삼천리 | |
1935년 11월 20일 | 평론 | 내가 본 톨스토이 | 조선중앙일보 | |
1935년 11월 | 단편 | 색시 | 조광 | |
1935년 11월 | 수필 | 불국사의 돌층계 | 조광 | |
1935년 11월 | 단편 | 孫巨富 | 신동아 | |
1935년 11월 | 단편 | 純情 | 사해공론 | |
1935년 11월 | 수필 | 나와 동식물―나와 닭 | 조광 | |
1935년 12월 | 평론 | 남의 글 | 학등 | |
1936년 1월 | 단편 | 三月 | 사해공론 | |
1936년 1월 | 단편 | 가마귀 | 조광 | |
1936년 1월 27~29일 | 평론 | 新春創作界槪觀―簡單한 讀後感 | 조선중앙일보 | |
1936년 1월 | 수필 | 어렴풋한 시절 | 조광 | |
1936년 1월 | 수필 | 옆집의 ‘냄새’業 | 중앙 | |
1936년 2월 | 희곡 | 山사람들 | 중앙 | |
1936년 3월 | 수필 | 고목 | 조광 | |
1936년 3월 | 수필 | 내가 가진 귀중품―書案三品 | 조광 | |
1936년 3월 | 수필 | 감사 | 梨花 | |
1936년 4월 | 수필 | 달래 | 여성 | |
1936년 4월 | 수필 | 미쓰 스프링 | 중앙 | |
1936년 4월 18일 | 수필 | 春服은 미완성―旅棧雜記1 | 조선중앙일보 | |
1936년 4월 20일 | 수필 | 사금·광산·곡선―여잔잡기2 | 조선중앙일보 | |
1936년 4월 22일 | 수필 | 해협 오전3시―여잔잡기3 | 조선중앙일보 | |
1936년 4월 23일 | 수필 | 山陽線의 우울―여잔잡기4 | 조선중앙일보 | |
1936년 4월 24일 | 수필 | 악 아닌 악―여잔잡기5 | 조선중앙일보 | |
1936년 4월 25일 | 수필 | 매화·총·철도―여잔잡기6 | 조선중앙일보 | |
1936년 4월 26일 | 수필 | 러스킨 문고―여잔잡기7 | 조선중앙일보 | |
1936년 4월 27일 | 수필 | 機種新書一枝蘭―여잔잡기8 | 조선중앙일보 | |
1936년 5월 1일 | 수필 | 온실의 자연들―여잔잡기9 | 조선중앙일보 | |
1936년 5월 | 평론 | 광업자와 작가 | 조선문학 | |
1936년 6월 | 수필 | 야간비행 | 조선문학 | |
1936년 6월 2~30일 | 長篇 | 黃眞伊 | 조선중앙일보 | 연재중단됨 |
1936년 6월 22일 | 평론 | 그의 고난에 敬禮한다 | 조선중앙일보 | |
1936년 8월 | 수필 | 바다 | 중앙 | |
1936년 7월 | 단편 | 바다 | 사해공론 | |
1936년 8월 | 평론 | 한글문학만이 조선문학 | 삼천리76 | |
1936년 9월 | 수필 | 피서지의 하로 | 여성 | |
1936년 10월 | 단편 | 장마 | 조광 | |
1936년 10월 | 단편 | 鐵路 | 여성 | |
1937년 2월 | 앙케트 | 文化問答·趣味問答·渡世問答·生活問答·유모아問答 | 조광 | |
1937년 2월 | 장편 | 第二의 運命 | 한성도서 | |
1937년 3월 | 단편 | 福德房 | 조광 | |
1937년 3~7월 | 중편 | 코스모스 피는 庭園 | 여성 | |
1937년 5월 25~26일 | 평론 | 누구를 위해 쓸 것인가?―近感數題 | 조선일보 | |
1937년 6월 5일 | 평론 | ‘휴매니즘’ 云云은 評論을 爲한 評論 | 동아일보 | |
1937년 6월 | 문장론 | 文章一語 | 조선문학 | |
1937년 6월 4일 | 평론 | 휴맨이즘 云云은 평론을 위한 평론 | 동아일보 | |
1937년 6월 27일 | 평론 | 評論態度에 對하여―評筆의 焦燥性 | 동아일보 | |
1937년 6월 29일 | 평론 | 評論態度에 對하여―作家가 바라는 評論家―(評者도 自己부터 찾기를) | 동아일보 | |
1937년 6월 | 평론 | 文章一語 | 조선문학 | |
1937년 6월 | 수필 | 병후수제 | 梨花 | |
1937년 6월 | 평론 | 소설 심사평 | 梨花 | |
1937년 6월 | 장편 | 久遠의 女像 | 영창서관 | |
1937년 7월 | 평론 | 成敗一般 | 조광 | |
1937년 7월 2일 | 단편 | 沙漠의 花園 | 조선일보 | |
1937년 7월 14일 | 평론 | 生活樣式과 立體的 構成 | 조선일보 | |
1937년 7월 29일 ~ 12월 22일 | 長篇 | 花冠 | 조선일보 | |
1937년 8월 | 단편집 | 가마귀 | 한성도서 | |
1937년 9월 | 평론 | ‘人格尊重’批判을 待望 | 조광 | |
1937년 12월 25일 | 평론 | 驚山隨筆集 「路傍草」를 읽고 | 조선일보 | |
1938년 1월 1일 | 좌담 | 長篇小說論 | 조선일보 | |
1938년 1월 | 단편 | 浿江冷 | 삼천리문학 | |
1938년 2월 | 장편 | 黃眞伊 | 동광당서점 | |
1938년 3월 1일 | 평론 | 참다운 藝術家노릇, 이제부터 始作할 決心이다 | 조선일보 | |
1938년 4월 | 평론 | 金尙鎔의 人間과 藝術 | 삼천리문학 | |
1938년 4월 | 수필 | ‘履霜堅氷至’ 기타 | 삼천리문학 | |
1938년 6월 1일 | 평론 | 一人秤小說의 超然意識 | 조선일보 | |
1938년 7월 | 평론 | 小說讀本 | 여성28 | |
1938년 8월 5일 | 평론 | 歎息하는 東方精神 | 조선일보 | |
1938년 9월 | 장편 | 花冠 | 삼문사 | |
1938년 10월 | 평론 | 作品愛 | 박문1 | |
1938년 11월 14일 | 평론 | 이광수씨의 全作 「사랑」을 推薦함 | 조선일보 | |
1938년 12월 | 평론 | 春園의 全作 「사랑」 독후감 | 박문3 | |
1939년 2~3월 | 단편 | 寧越令監 | 문장 | |
1939년 2월 5일 ~ 7월 19일 | 長篇 | 딸 삼형제 | 동아일보 | 改題 |
1939년 2~10월 | 문장론 | 文章講話 | 문장 | |
1939년 4월 | 수필 | 模倣 | 문장 | |
1939년 4월 | 심사평 | 推薦作品選後 | 문장 | |
1939년 5월 | 심사평 | 推薦作品選後 | 문장 | |
1939년 5월 31일 ~ 6월 6일 | 평론 | 批評과 批評精神 | 조선일보 | |
1939년 6월 | 단편 | 阿蓮 | 문장 | |
1939년 6월 | 심사평 | 小說選後 | 문장 | |
1939년 6월 | 단편 | 農軍 | 문장 | |
1939년 8월 | 심사평 | 小說選後 | 문장 | |
1939년 9월 | 수필 | 목수들 | 문장 | |
1939년 11월 | 장편 | 三姉妹 | 문장사 | |
1939년 12월 | 단편집 | 李泰俊 短篇選 | 박문서관 | |
1939년 12월 | 수필 | 文房雜器 | 문장 | |
1940년 1월 | 좌담 | 문학의 제문제 | 문장 | |
1940년 2월 | 수필 | 小說의 어려움―이제 깨닫는 듯 | 문장 | |
1940년 2월 | 수필 | 작가지망인을 위하야 | 문장 | |
1940년 3월 | 평론 | 문장의 고전·현대·언문일치 | 문장 | |
1940년 3월 21일 ~ 8월 11일 | 長篇 | 靑春茂盛 | 조선일보 | 연재중단됨 |
1940년 4월 | 평론 | 新作家 崔泰應君·其他 | 문장 | |
1940년 4월 | 문장론 | 文章講話 | 문장사 | |
1940년 5월 ~ 6·7월 | 단편 | 밤길 | 문장 | |
1940년 5월 | 심사평 | 小說選後 | 문장 | |
1940년 6월 | 앙케트 | 선생이 가지신 시계는 | 여성 | |
1940년 7월 | 수필 | 養蘭 | 여성 | |
1940년 7월 | 평론 | 박태원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에 | 삼천리 | |
1940년 8월 | 좌담 | 현대여성의 고민을 말한다 | 여성 | |
1940년 9월 | 평론 | 통속성· ‘춘향전’의 맛 | 문장 | |
1940년 10월 | 평론 | 古翫品과 生活 | 문장 | |
1940년 10월 | 장편 | 靑春茂盛 | 박문서관 | |
1940년 11월 | 수필 | 지원병훈련소의 일일 | 문장 | |
1940년 12월 | 평론 | 妓生과 詩文 | 문장 | |
1940년 12월 | 수필 | 墨竹과 신부 | 여성 | |
1940년 12월 | 수필 | 체홉의 「오렝카」 | 삼천리 | |
1941년 1월 | 수필 | 희망 | 박문 | |
1941년 1월 | 심사평 | 許民君의 「魚山琴」을 추천함 | 문장 | |
1941년 1월 | 좌담 | 문학의 제문제 | 문장 | |
1941년 1월 | 단편집 | 福德房 | 일본사 | 日文 |
1941년 2월 | 단편 | 토끼 이야기 | 문장 | |
1941년 3월 | 단편집 | 李泰俊 短篇集 | 학예사 | |
1941년 3월 | 평론 | 小說 | 문장 | |
1941년 3월 4일 ~ 7월 5일 | 長篇 | 思想의 月夜 | 매일신보 | |
1941년 9월 | 평론 | 文學構成의 特質 | 삼천리148 | |
1941년 9월 | 수필집 | 無序錄 | 박문서관 | |
1942년 1월 7일 | 평론 | 우리 文壇의 吉兆―新春文藝選後感(小說) | 매일신보 | |
1942년 1월 ~ 1943년 6월 | 長篇 | 별은 窓마다 | 신시대 | |
1942년 1월 ~ 1943년 6월 | 長篇 | 幸福에의 흰 손들 | 조광 | 改題 |
1942년 2월 | 단편 | 사냥 | 春秋 | |
1942년 2월 | 단편 | 夕陽 | 국민문학 | |
1942년 4월 | 수필 | 덕수궁박물관 | 신시대 | |
1942년 12월 22일 ~ 1943년 6월 16일 | 長篇 | 王子好童 | 매일신보 | |
1942년 6월 | 단편 | 無緣 | 춘추 | |
1942년 7월 | 평론 | 두 連載物에 대하여―連載長篇과 作家 | 대동아2 | |
1942년 8월 | 수필 | 陶邊夜話 | 춘추 | |
1943년 1월 | 단편 | 石橋 | 국민문학 | |
1943년 2월 | 번역서 | 大東亞戰記 (이무영 공역) | 인문사 | |
1943년 5월 | 수필 | 意無盡記 | 춘추 | |
1943년 7월 | 문장론 | 書簡文講話 | 박문서관 | |
1943년 11월 | 장편 | 王子好童 | 남창서관 | |
1943년 11월 | 장편 | 三人友達 | 남창서관 | 개제됨 |
1943년 12월 | 단편집 | 돌다리 | 박문서관 | |
1943년 12월 | 단편 | 뒷방마냄 | 돌다리 | |
1944년 6월 | 수필 | 목포 조선 현지기행 | 신시대 | |
1944년 7월 | 수필 | 자연과 인생 | 신시대 | |
1945년 3월 | 장편 | 별은 窓마다 | 박문서관 | |
1945년 10월 | 단편 | 즐거운 記憶 | 한성일보 | |
1945년 12월 | 평론 | 아동문학에 있어서의 성인문학가의 임무 | 아동문학1 | |
1945년 12월 | 수필 | 여성에게 보내는 말―선후의 분별 | 여성문화 | |
1945년 12월 | 수필 | 산업문화에서의 창씨개명문제 | 우리공론 | |
1946년 1월 1일 | 평론 | 髓想―履霜 | 서울신문 | |
1946년 1월 | 평론 | 展望이라기보다 主張―解放第二年의 文化界 展望(創作) | 개벽 | |
1946년 1월 25일 | 평론 | 시대성과 예술성 | 서울신문 | |
1946년 2월 | 평론 | 문화인의 政治抗戰 | 중앙신문 | |
1946년 2월 26일 ~ 3월 3일 | 평론 | 문학과 정치―우리는 웨 정치에 관여하는가 | 한성일보 | |
1946년 2월 | 단편 | 너 | 시대일보 | |
1946년 3월 25일 | 평론 | 작자의 말 | 현대일보 | |
1946년 3월 27일 ~ 7월 29일 | 長篇 | 不死鳥 | 현대일보 | 연재중단됨 |
1946년 5월 | 평론 | 情熱과 知性 | 민성6 | |
1946년 5월 | 장편 | 세 동무 | 범문사 | 개제됨 |
1946년 7월 | 평론 | 國語에 대하여 | 대조2 | |
1946년 7월 | 문학론 | 尙虛文學 讀本 | 백양사 | |
1946년 8월 | 단편 | 解放前後 | 문학 | |
1946년 11월 | 장편 | 思想의 月夜 | 을유문화사 | |
1946년 11월 | 평론 | 文學家同盟 여러분에게 | 문학2 | |
1947년 | 단편집 | 解放前後 | 조선문학사 | |
1947년 4월 | 수필 | 붉은 광장에서―소련기행 | 문학3 | |
1947년 4월 | 평론 | 영웅적 활동은 승리로 극복한다 | 문학3 | |
1947년 5월 | 기행문 | 蘇聯紀行 | 백양당/북조선출판사 | |
1947년 | 단편집 | 돌다리 | 을유문화사 | |
1947년 | 단편집 | 복덕방 | 을유문화사 | |
1948년 8월 | 장편 | 農土 | 삼성문화사 | |
1948년 12월 | 단편 | 첫전투 | 문학예술4(문화전선사) | |
1948년 | 문장론 | 增訂 文章講話 | 박문서관 | |
1949년 2월 | 장편 | 新婚日記 | 광문서림 | 개제됨 |
1949년 11월 | 단편 | 아버지의 모시옷 | 「첫전투」에 수록 | |
1949년 11월 | 단편 | 호랑이 할머니 | 「첫전투」에 수록 | |
1949년 11월 | 단편 | 삼팔선 어느 지구에서 | 「첫전투」에 수록 | |
1949년 | 단편집 | 첫전투 | 문화전선사 | |
1950년 | 기행문 | 혁명절의 모쓰크바 | 문화전선사 | |
1950년 3월 | 단편 | 먼지 | 문학예술 | |
1952년 | 단편집 | 고향길 | 재일본조선인교육자동맹 | |
1952년 | 단편 | 고귀한 사람들 | 「고향길」에 수록 | |
1952년 | 단편 | 고향길 | 「고향길」에 수록 | |
1952년 | 단편 | 백배천배로 | 「고향길」에 수록 | |
1952년 | 단편 | 누가 굴복하는가 보자 | 「고향길」에 수록 | |
1952년 | 단편 | 미국 대사관 | 「고향길」에 수록 | |
1952년 | 단편 | 네거리에 선 전신주 | 「고향길」에 수록 | |
1952년 | 단편 | 두 죽음 | 미확인 | |
1952년 | 문장론 | 신문장강화 | 재일본조선인교육자동맹 | |
1952년 | 기행문 | 위대한 새중국 | ||
1988년 5월 | 전집 | 이태준 전집 1~14 | 깊은샘 | |
1988년 8월 | 전집 | 이태준 문학전집 1~18 | 서음출판사 | |
1988년 10월 | 전집 | 해금문학전집 1~2 | 삼성출판사 | |
1988년 12월 | 선집 | 북으로 간 작가 선집 3~4 | 을유문화사 | |
1994년 | 전집 | 이태준 문학전집 | 깊은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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