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
학회 연혁

상허 이태준

호 상허(尙虛)·상허당주인(尙虛堂主人). 강원도 철원(鐵原)에서 출생하였다. 휘문고보를 나와 일본 조치[上智]대학에 수학하였으며, 《시대일보(時代日報)》에 《오몽녀(五夢女)》를 발표하면서 문단에 등단하였다. 구인회(九人會)에 가담하였고, 이후 이화여전 강사, 조선중앙일보(朝鮮中央日報) 학예부장 등을 역임하였다. 1930년대부터 본격적인 작품활동을 시작하였으며, 《가마귀》 《달밤》 《복덕방》 등의 단편소설은 인물과 성격의 차분한 내관적(內觀的) 묘사로 토착적인 생활을 부각시켜, 완결된 구성법과 함께 한국현대 소설의 기법적인 바탕을 이룩한 것으로 평가되었다. 작중 인물들은 회의적·감상적·패배적 성격으로 부각되어 작품 전체가 허무와 서정에 깊이 침윤되었지만, 때로는 그 속에서 현실과 밀착된 시대정신에의 추구를 지향하기도 했다.
《문장(文章)》지를 주관하다가 8·15광복 직전 철원에서 칩거하였으며, 광복 후에는 ‘조선문학가동맹’에 포섭되어 활약하다가 월북하였다. 그의 단편 《해방전후(解放前後)》(1946)에서 이러한 문학적 변모를 확인할 수 있다. 작품에는 앞에 든 것 외에 소설집 《구원(久遠)의 여상(女像)》 《딸 삼형제》 《사상(思想)》 《해방전후》 등이 있으며, 문장론 《문장강화(文章講話)》가 있다.
이태준 연보
1904년
11월 4일 강원도 철원군 묘장면 진명리 출생. 부친 이창하(李昌夏), 모친 순흥 안씨의 1남 2녀 중 장남. 집안은 장기 이씨(長? 李氏) 용담파(龍潭派). (?장기이씨 가승(家乘)?에 의하면 상허의 본명은 규태(奎泰). 부친의 정실 은 한양 조씨이고 적자로 규덕(奎悳)이 있음). 호는 상허(尙虛) · 상허당주인(尙虛堂主人). 父 이창하(1876~1909) 의 字는 문규(文奎), 호는 매헌(梅軒). 철원공립보통학교 교원, 덕원감리서 주사를 역임한 개화파적 지식인.
1909년
망명하는 아버지를 따라 러시아 땅 해삼위(블라디보스톡)로 이주. 8월 부친의 사망으로 귀국하던 중 함경북도 배기미(梨津)에 정착. 서당에서 한문 수학.
1912년
어머니 별세로 고아가 됨. 외조모 손에 이끌려 고향 철원 용담으로 귀향하여 친척집에 맡겨짐.
1915년
안협의 오촌집에 입양. 다시 용담으로 돌아와 오촌 이용하(李龍夏)의 집에 기거함. 철원 사립봉명학교에 입학.
1918년
3월에 봉명학교를 우등으로 졸업. 철원 읍내 간이농업학교에 입학하나 한 달 후 가출하여 여러 곳을 방랑하다 원산 등지에서 2년간 객주집 사환 등의 일을 하며 2년여를 보냄. 외조모가 찾아와 보살핌. 이때 문학서적 탐 독. 이후 중국 안동현까지 인척 아저씨를 찾아갔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고 경성으로 옴.
1920년
4월 배재학당 보결생 모집에 응시하여 합격하나 입학금 마련이 어려워 등록하지 못함. 낮에는 상점 점원으로 일하며 밤에는 야학에 나가 공부함.
1921년
4월 휘문고등보통학교에 입학. 고학생으로 비교적 우수한 성적을 받음. 이 때 상급반에 정지용·박종화, 하급반 에 박노갑, 스승으로 가람 이병기가 있었음. 습작을 시작함.
1924년
[휘문]의 학예부장으로 활동. 동화 [물고기 이약이] 등 6편의 글을 [휘문] 제2호에 발표함. 6월 13일에 동맹휴교의 주모자로 지적되어 5년제 과정 중 4학년 1학기에 퇴학. 이 해 가을 휘문고보 친구인 김연만의 도움으로 유학길에 오름.
1925년
일본에서 단편소설 [오몽녀(五夢女)]를 [조선문단]에 투고하여 입선, [시대일보](7월 13일)에 발표하며 등단함.
1926년
4월 동경 上智大學 예과에 입학. 신문·우유 배달 등을 하며 ‘공기만을 먹고사는’ 매우 궁핍한 생활을 함. 동경에서 [반도산업] 발행. 이 때 나도향, 화가 김용준,김지원 등과 교유.
1927년
11월 학교를 중퇴하고 귀국함. 각 신문사와 모교를 방문하여 일자리를 구하나 취업난에 직면함.
1929년
개벽사에 기자로 입사. [학생](1929.3~10) 창간 때부터 책임자. [신생] 등의 잡지 편집에 관여함. [어린이] 지에 소년물과 掌篇을 다수 발표함. 9월 백산 안희제의 사장 취임에 맞춰 [중외일보]로 자리를 옮김. 사회부에서 3개월 근무 후 학예부로 옮김.
1930년
이화여전 음악과를 갓 졸업한 이순옥(李順玉)과 결혼.
1931년
[중외일보] (6.19 종간)기자로 있다가, 신문 폐간과 함께 개제된 [중앙일보](사장 여운형) 학예부 기자가 됨. 장녀 소명(小明) 태어 남. 경성부 서대문정 2정목 7의 3 다호에 거주.
1932년
이화여전(梨專1932~1937)·이화보육학교(梨保)·경성보육학교(京保) 등 학교에 출강하며 작문을 가르침. 장남 유백(有白) 태어남.
1933년
박태원·이효석 등과 함께 ‘구인회(九人會)’를 조직. 1933년 3월 7일 [중앙일보]에서 개제된 [조선중앙일보] 학예부장에 임명됨. 경성부 성북정 248번지로 이사. 이후 월북 전까지 이곳에서 거주함.
1934년
차녀 소남(小楠) 태어남.
1935년
1월, 8월 2회에 걸쳐 표준어사정위원회 전형위원, 기록 담당. 조선중앙일보를 퇴사, 창작에 몰두함.
1936년
차남 유진(有進) 태어남.
1937년
[五夢女]가 나운규에 의해 영화화됨(주연 윤봉춘, 노재신. 이 작품이 春史의 마지막 작품임).
1938년
만주 지방 여행.
1939년
[문장(文章)]지 편집자 겸 신인 작품의 심사를 맡음 (임옥인·최태응·곽하신 등이 추천됨). 이후 황군위문작가단, 조선문인협회 등의 단체에서 활동.
1940년
삼녀 소현(小賢) 태어남.
1941년
제2회 조선예술상 받음(1회는 春園이 수상).
1943년
강원도 철원 안협으로 낙향. 해방 전까지 이곳에서 칩거함.
1945년
문화건설중앙협의회, 문학가동맹, 남조선민전 등의 조직에 참여. 문학가동맹 부위원장, [현대일보] 주간 등을 역임.
1946년
2월부터 민주주의 민족전선 문화부장으로 활동. 남조선 조소문화협회 이사. 7월~8월 상순 사이에 월북. [해방전후]로 제1회 해방문학상 수상. 장남 휘문중학 입학. 8월 10일부터 10월 17일까지 ‘방소문화사절단’의 일원으로 소련의 모스크바, 레닌그라드 등지를 여행.
1947년
5월 소련 여행기인 [쏘련기행]이 남쪽에서 출간됨.
1948년
8·15 북조선최고인민회의 표창장을 받음.
1949년
북조선문학예술총동맹 부위원장, 국가학위수여위원회 문학분과 심사위원이 됨. 단편 [호랑이 할머니] 발표. 이 작품은 해방 후 북한에서 발표된 ‘최고의 걸작’으로 평가됨.
1950년
6·25 동란 중 낙동강 전선까지 종군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서울에 들러 문학동맹 사람들을 모아놓고 전과 보고 연설을 함. 10월 중순 평양수복 때 ‘문예총’은 강계로 소개(疏開)하였는데 이태준은 따라가지 않고 평양 시외에 숨어 있으면서 은밀히 귀순을 모색하였다고 함. 12월 국방군의 북진을 따라 문화계 인사들이 이태준을 구출하려 했으나 실패함.
1952년
남로당과 함께 숙청될 위기에서 소련파 기석복(奇石福)의 후원으로 제외됨.
1954년
3개월간의 사상검토 작업 중 과거를 추궁당함.
1956년
소련파의 몰락과 더불어 과거 ‘구인회’ 활동과 사상성을 이유로 1월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상무회의 결의로 임화, 김남천과 함께 가혹한 비판을 받음. 2월 ‘평양시당 관할 문학예술부 열성자대회’에서 한설야에 의해 비 판, 숙청당함.
1957년
함흥노동신문사 교정원으로 배치됨.
1958년
함흥 콘크리트 블록 공장의 파고철 수집 노동자로 배치됨.
1964년
중앙당 문화부 창작 제1실 전속작가로 복귀함.
1969년
김진계의 구술기록([조국], 현장문학사, 1991(재판))에 의하면, 1월경 강원도 장동탄광 노동자 지구에서 사회보 장으로 부부가 함께 살고 있었다고 함. 이후 연도 미상이나 사망한 것으로 알려짐(북한의 원로 문학평론가 장현준과의 인터뷰 기사 - [한겨레신문], 1991. 12. 19). 일설에는 1953년 남로당파의 숙청이 끝난 가을 자강도 산 간 협동농장에서 막노동을 하다가 1960년대 초 산간 협동농장에서 병사한 것으로 알려짐(강상호, [내가 치른 북한 숙청], [중앙일보], 1993. 6. 7)
작품 연보
년월일
종류
작품제목
출전
비고
1924년 6월
童話
물고기 이약이
徽文
1925년 7월 13일
단편
五夢女
시대일보
1926년 1월
단편
구장의 처
반도산업(신발굴)
1927년 8월
평론
稻香생각 몇가지
현대평론
1928년 7월 11,12일
수필
백일몽(상, 하)
동아일보
1929년 1월
童話
어린 守門將
어린이
1929년 1월
수필
喫茶와 握手
별건곤
1929년 2월
童話
불상한 少年美術家
어린이
1929년 3월
단편
幸福
학생
1929년 3월 19일
掌篇
모던껄의 晩餐
조선일보
*改題
1929년 4월
수필
야단들이다
학생
1929년 4월
수필
추억(중학시대)
학생
1929년 5월
童話
슬픈 명일 秋夕
어린이
1929년 5월
단편
그림자
槿友
*창간호
1929년 5월 10~12일
단편
溫室花草
조선일보
1929년 6월
단편
누이
문예공론
1929년 6월
童話
쓸쓸한 밤길
어린이
1929년 6월
수필
도보 삼천리
학생
1929년 7월
수필
신생
1929년 7,8월(합병호)
童話
불상한 三兄弟
어린이
1929년 8월
수필
여름
학생
1929년 9월
희곡
엇던 날의 뻬―토벤
학생
1929년 10월
수필
幽靈의 鍾路, 街頭漫筆
별건곤
1930년 1월
수필
청춘고백 공상시대-나폴레온 시대 이하
학생
1930년 1월
수필
오십전 銀貨
신소설
1930년 1월
掌篇
百科全書의 新意義
신소설
*改題
1930년 1월
童話
눈물의 入學
어린이
1930년 1월
단편
妓生 山月이
별건곤
*改題
1930년 2월
수필
路上
신생
1930년 3월
수필
張主事不知
별건곤
1930년 3월
수필
봄비소리
신생
1930년 4월
수필
복사꽃
학생
1930년 4월 20,21일
합평회
제1회 동미전 합평기(상, 중)
중외일보
1930년 5월
掌篇
恩姬夫妻
신소설
1930년 5월
평론
朝鮮의 文學評論은 어디로 歸結될가?―問題漠然
대조3
1930년 5월
설문
내가 본 나-명사의 자아관
별건곤
1930년 6월
童話
6월의 하누님
어린이
1930년 6월
수필
신록
별건곤
1930년 6월
수필
학생의 추억 P군 생각
학생
1930년 7월
수필
惡伴侶
신민
1930년 7월
수필
여름날의 옛긔역-무지개
어린이
1930년 8월
수필
귀뚜라미
별건곤
1930년 8월
童話
과꽃
어린이
1930년 8월
수필
모기장 속
신민
1930년 9월
단편
어떤 날 새벽
신소설
1930년 10월 22~31일
평론
제10회 조선서화협전을 보고1~8
동아일보
1930년 11월
수필
가을 거리의 남녀 풍경
별건곤
1930년 11월
童話
외로운 아이
어린이
1930년 12월
수필
눈 온 아침
신생
1931년 1월
수필
두 강도의 면영과 직업적 냉정 문제
철필
1931년 2월
童話
몰라쟁이 엄마
어린이
1931년 2월 1~5일
평론
詩人·冥想·豫言〈自然과 그 禮讚者〉
매일신보
1931년 3월
수필
봄날이외다
신생
1931년 3월
수필
삼월과 인생
혜성
1931년 3~5월
평론
學生連作小說槪評
학생2, 3~5
1931년 3월 ~ 1932년 8월
長篇
久遠의 如像
신여성
1931년 4월
수필
봄은 어데 오나!
신여성
1931년 4월 6일
단편
結婚의 惡魔性
혜성
*改題
1931년 4월 21~29일
단편
故鄕
동아일보
1931년 6월
童話
6월과 구름
어린이
1931년 6월
수필
산과 추억
신생
1931년 7월
수필
복덕방 영감
동광
1931년 7월
단편
불도나지 안엇소, 도적도 나지안엇소, 아무일도 없소
동광
1931년 10월
수필
오오 청춘 둥지도 없이
동광
1931년 12월
수필
낙서
동광
1932년 1월
수필
독서소론
신생
1932년 1월
수필
낙서
신생
1932년 1월 28일
평론
사라지는 서울의 시
조선일보
1932년 2월
평론
讀書小論
신생38
1932년 2월
수필
참새생각
혜성
1932년 3월
수필
나의 고아시대
白岳
1932년 4월
단편
東方評論
1932년 4월
단편
不遇先生
삼천리
1932년 4월
수필
낙서
신생
1932년 5월
수필
낙서
신생
1932년 5월
掌篇
天使의 憤怒
신동아
1932년 6월
수필
낙서
신생
1932년 7월
단편
失樂園 이야기
동방평론
1932년 7월
童話
슬퍼하는 나무
어린이
1932년 7월 8일
수필
신생
1932년 9월
수필
龍潭 이야기
신동아
1932년 9월
단편
서글픈 이야기
신동아
1932년 9월
수필
無識
한글
1932년 10월
수필
낙서(밤)
신생
1932년 10월
단편
코스모스 이야기
梨花
1932년 10월
수필
편지―나의 존경하는 S군에게
여인
1932년 11월
수필
돈과 淸閑
신생
1932년 12월 3일
수필
낙서(목욕과 이발)
신생
1932년 12월
수필
남행열차
신동아
1932년 12월
앙케트
나의 총결산
신동아
1933년 1월
단편
슬픈 勝利者
신가정
1933년 1월
수필
隨想二題
중앙
1933년 2월
수필
낙서
신생
1933년 3월
수필
봄글
신동아
1933년 3월
단편
꽃나무는 심어놓고
신동아
1933년 3월
수필
그들의 얼굴 우에서
신가정
1933년 3월
수필
못본이 상상기
신가정
1933년 3월
수필
낙서
신생
1933년 4월
수필
조고만 객주ㅅ집 사환
신가정
1933년 4월
수필
동경에 있는 S누이에게
신가정
1933년 4월 ~ 1934년 4월
長篇
法은 그러치만
신여성
1933년 5월
수필
내게는 웨 어머니가 없나
신가정
1933년 6월
수필
낙화의 적막
신가정
1933년 7월
앙케트
돌연 눈이 먼다면
신동아
1933년 7월 23일
掌篇
미어기
동아일보
1933년 8월 22~26일
평론
투르게―넵흐와 나
조선일보
1933년 8월 25일 ~ 1934년 2월 23일
長篇
第二의 運命
조선중앙일보
1933년 8월 31일 ~ 9월 1일
평론
藝術의 東西
조선일보
1933년 8월
수필
무서운 바다
신가정
1933년 9월
단편
아담의 後裔
신동아
1933년 10월
단편
어떤 젊은 어미
신가정
1933년 10월
掌篇
코가 복숭아처럼 붉은 여자
조선문학
1933년 10월
掌篇
馬夫와 敎授
學燈
1933년 10월
평론
신문소설과 작자심경-「第二의 運命」을 쓰면서
삼천리
1933년 10월 14일
평론
評家여 좀더 謙遜하여라
조선일보
1933년 11월
단편
달밤
중앙
1933년 12월
앙케트
송년사
신가정
1933년 12월 6일
평론
‘無知한 讀者’라는 것
동아일보
1934년 1월 1일
평론
作品과 生活이 競走中
조선일보
1934년 1월
앙케트
신가정
1934년 1월
희곡
어머니
중앙
1934년 2~7월
중편
박물장사 늙은이
신가정
1934년 3월
掌篇
氷點下의 憂鬱
學燈
1934년 3월
단편
촌띄기
農民旬報
1934년 3월 9~30일
평론
短篇과 掌篇, 環境에 適應하는 形態로서
동아일보
1934년 3월 25일
평론
박화성의 [白花]
조선중앙일보
1934년 5월
수필
인생과 연애
중앙
1934년 5월
수필
만년필
학등
1934년 4월
수필
강아지
신가정
1934년 5월 15일 ~ 1935년 3월 30일
長篇
不滅의 喊聲
조선중앙일보
1934년 6월
수필
음악과 가정
중앙
1934년 6월 ~ 1935년 1월
평론
글짓는 법 A.B.C―처음 글쓰는 이들을 위하야
중앙8~15
1934년 6월 11일
수필
태극선
조선중앙일보
1934년 7월
단편집
달밤
한성도서
1934년 9월
단편
點景
중앙
1934년 10월
수필
고독
신가정
1934년 10월
수필
파초
청년조선
1934년 11월
단편
어둠
개벽
*改題
1934년 12월 13~19일
수필
旅情의 하로
조선중앙일보
1935년 1월
수필
청춘고백―공상시대
학생
1935년 3월
중편
愛慾의 禁獵區
중앙
1935년 3월 14일
평론
金東仁氏의 短篇集 "감자"
조선중앙일보
1935년 4월
수필
복사꽃
학생
1935년 4월
수필
P군 생각―학창의 추억
학생
1935년 4월
수필
신도
학등
1935년 5월
평론
김문집 저 『批評文學』에 대한 각계의 一家見
청색지
1935년 5월 26일 ~ 1936년 1월 20일
長篇
聖母
조선중앙일보
1935년 6월
평론
小說과 文章
사해공론
1935년 6월
평론
내가 존경하는 현대조선의 작가와 외국인에게 자랑할 작품
중앙
1935년 7월 2일
수필
閑日―夏日散話
조선중앙일보
1935년 8월 11~12일
평론
九人會에 대한 難解·其他
조선중앙일보
1935년 9월
수필
집 이야기
삼천리
1935년 11월 20일
평론
내가 본 톨스토이
조선중앙일보
1935년 11월
단편
색시
조광
1935년 11월
수필
불국사의 돌층계
조광
1935년 11월
단편
孫巨富
신동아
1935년 11월
단편
純情
사해공론
1935년 11월
수필
나와 동식물―나와 닭
조광
1935년 12월
평론
남의 글
학등
1936년 1월
단편
三月
사해공론
1936년 1월
단편
가마귀
조광
1936년 1월 27~29일
평론
新春創作界槪觀―簡單한 讀後感
조선중앙일보
1936년 1월
수필
어렴풋한 시절
조광
1936년 1월
수필
옆집의 ‘냄새’業
중앙
1936년 2월
희곡
山사람들
중앙
1936년 3월
수필
고목
조광
1936년 3월
수필
내가 가진 귀중품―書案三品
조광
1936년 3월
수필
감사
梨花
1936년 4월
수필
달래
여성
1936년 4월
수필
미쓰 스프링
중앙
1936년 4월 18일
수필
春服은 미완성―旅棧雜記1
조선중앙일보
1936년 4월 20일
수필
사금·광산·곡선―여잔잡기2
조선중앙일보
1936년 4월 22일
수필
해협 오전3시―여잔잡기3
조선중앙일보
1936년 4월 23일
수필
山陽線의 우울―여잔잡기4
조선중앙일보
1936년 4월 24일
수필
악 아닌 악―여잔잡기5
조선중앙일보
1936년 4월 25일
수필
매화·총·철도―여잔잡기6
조선중앙일보
1936년 4월 26일
수필
러스킨 문고―여잔잡기7
조선중앙일보
1936년 4월 27일
수필
機種新書一枝蘭―여잔잡기8
조선중앙일보
1936년 5월 1일
수필
온실의 자연들―여잔잡기9
조선중앙일보
1936년 5월
평론
광업자와 작가
조선문학
1936년 6월
수필
야간비행
조선문학
1936년 6월 2~30일
長篇
黃眞伊
조선중앙일보
연재중단됨
1936년 6월 22일
평론
그의 고난에 敬禮한다
조선중앙일보
1936년 8월
수필
바다
중앙
1936년 7월
단편
바다
사해공론
1936년 8월
평론
한글문학만이 조선문학
삼천리76
1936년 9월
수필
피서지의 하로
여성
1936년 10월
단편
장마
조광
1936년 10월
단편
鐵路
여성
1937년 2월
앙케트
文化問答·趣味問答·渡世問答·生活問答·유모아問答
조광
1937년 2월
장편
第二의 運命
한성도서
1937년 3월
단편
福德房
조광
1937년 3~7월
중편
코스모스 피는 庭園
여성
1937년 5월 25~26일
평론
누구를 위해 쓸 것인가?―近感數題
조선일보
1937년 6월 5일
평론
‘휴매니즘’ 云云은 評論을 爲한 評論
동아일보
1937년 6월
문장론
文章一語
조선문학
1937년 6월 4일
평론
휴맨이즘 云云은 평론을 위한 평론
동아일보
1937년 6월 27일
평론
評論態度에 對하여―評筆의 焦燥性
동아일보
1937년 6월 29일
평론
評論態度에 對하여―作家가 바라는 評論家―(評者도 自己부터 찾기를)
동아일보
1937년 6월
평론
文章一語
조선문학
1937년 6월
수필
병후수제
梨花
1937년 6월
평론
소설 심사평
梨花
1937년 6월
장편
久遠의 女像
영창서관
1937년 7월
평론
成敗一般
조광
1937년 7월 2일
단편
沙漠의 花園
조선일보
1937년 7월 14일
평론
生活樣式과 立體的 構成
조선일보
1937년 7월 29일 ~ 12월 22일
長篇
花冠
조선일보
1937년 8월
단편집
가마귀
한성도서
1937년 9월
평론
‘人格尊重’批判을 待望
조광
1937년 12월 25일
평론
驚山隨筆集 「路傍草」를 읽고
조선일보
1938년 1월 1일
좌담
長篇小說論
조선일보
1938년 1월
단편
浿江冷
삼천리문학
1938년 2월
장편
黃眞伊
동광당서점
1938년 3월 1일
평론
참다운 藝術家노릇, 이제부터 始作할 決心이다
조선일보
1938년 4월
평론
金尙鎔의 人間과 藝術
삼천리문학
1938년 4월
수필
‘履霜堅氷至’ 기타
삼천리문학
1938년 6월 1일
평론
一人秤小說의 超然意識
조선일보
1938년 7월
평론
小說讀本
여성28
1938년 8월 5일
평론
歎息하는 東方精神
조선일보
1938년 9월
장편
花冠
삼문사
1938년 10월
평론
作品愛
박문1
1938년 11월 14일
평론
이광수씨의 全作 「사랑」을 推薦함
조선일보
1938년 12월
평론
春園의 全作 「사랑」 독후감
박문3
1939년 2~3월
단편
寧越令監
문장
1939년 2월 5일 ~ 7월 19일
長篇
딸 삼형제
동아일보
改題
1939년 2~10월
문장론
文章講話
문장
1939년 4월
수필
模倣
문장
1939년 4월
심사평
推薦作品選後
문장
1939년 5월
심사평
推薦作品選後
문장
1939년 5월 31일 ~ 6월 6일
평론
批評과 批評精神
조선일보
1939년 6월
단편
阿蓮
문장
1939년 6월
심사평
小說選後
문장
1939년 6월
단편
農軍
문장
1939년 8월
심사평
小說選後
문장
1939년 9월
수필
목수들
문장
1939년 11월
장편
三姉妹
문장사
1939년 12월
단편집
李泰俊 短篇選
박문서관
1939년 12월
수필
文房雜器
문장
1940년 1월
좌담
문학의 제문제
문장
1940년 2월
수필
小說의 어려움―이제 깨닫는 듯
문장
1940년 2월
수필
작가지망인을 위하야
문장
1940년 3월
평론
문장의 고전·현대·언문일치
문장
1940년 3월 21일 ~ 8월 11일
長篇
靑春茂盛
조선일보
연재중단됨
1940년 4월
평론
新作家 崔泰應君·其他
문장
1940년 4월
문장론
文章講話
문장사
1940년 5월 ~ 6·7월
단편
밤길
문장
1940년 5월
심사평
小說選後
문장
1940년 6월
앙케트
선생이 가지신 시계는
여성
1940년 7월
수필
養蘭
여성
1940년 7월
평론
박태원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에
삼천리
1940년 8월
좌담
현대여성의 고민을 말한다
여성
1940년 9월
평론
통속성· ‘춘향전’의 맛
문장
1940년 10월
평론
古翫品과 生活
문장
1940년 10월
장편
靑春茂盛
박문서관
1940년 11월
수필
지원병훈련소의 일일
문장
1940년 12월
평론
妓生과 詩文
문장
1940년 12월
수필
墨竹과 신부
여성
1940년 12월
수필
체홉의 「오렝카」
삼천리
1941년 1월
수필
희망
박문
1941년 1월
심사평
許民君의 「魚山琴」을 추천함
문장
1941년 1월
좌담
문학의 제문제
문장
1941년 1월
단편집
福德房
일본사
日文
1941년 2월
단편
토끼 이야기
문장
1941년 3월
단편집
李泰俊 短篇集
학예사
1941년 3월
평론
小說
문장
1941년 3월 4일 ~ 7월 5일
長篇
思想의 月夜
매일신보
1941년 9월
평론
文學構成의 特質
삼천리148
1941년 9월
수필집
無序錄
박문서관
1942년 1월 7일
평론
우리 文壇의 吉兆―新春文藝選後感(小說)
매일신보
1942년 1월 ~ 1943년 6월
長篇
별은 窓마다
신시대
1942년 1월 ~ 1943년 6월
長篇
幸福에의 흰 손들
조광
改題
1942년 2월
단편
사냥
春秋
1942년 2월
단편
夕陽
국민문학
1942년 4월
수필
덕수궁박물관
신시대
1942년 12월 22일 ~ 1943년 6월 16일
長篇
王子好童
매일신보
1942년 6월
단편
無緣
춘추
1942년 7월
평론
두 連載物에 대하여―連載長篇과 作家
대동아2
1942년 8월
수필
陶邊夜話
춘추
1943년 1월
단편
石橋
국민문학
1943년 2월
번역서
大東亞戰記 (이무영 공역)
인문사
1943년 5월
수필
意無盡記
춘추
1943년 7월
문장론
書簡文講話
박문서관
1943년 11월
장편
王子好童
남창서관
1943년 11월
장편
三人友達
남창서관
개제됨
1943년 12월
단편집
돌다리
박문서관
1943년 12월
단편
뒷방마냄
돌다리
1944년 6월
수필
목포 조선 현지기행
신시대
1944년 7월
수필
자연과 인생
신시대
1945년 3월
장편
별은 窓마다
박문서관
1945년 10월
단편
즐거운 記憶
한성일보
1945년 12월
평론
아동문학에 있어서의 성인문학가의 임무
아동문학1
1945년 12월
수필
여성에게 보내는 말―선후의 분별
여성문화
1945년 12월
수필
산업문화에서의 창씨개명문제
우리공론
1946년 1월 1일
평론
髓想―履霜
서울신문
1946년 1월
평론
展望이라기보다 主張―解放第二年의 文化界 展望(創作)
개벽
1946년 1월 25일
평론
시대성과 예술성
서울신문
1946년 2월
평론
문화인의 政治抗戰
중앙신문
1946년 2월 26일 ~ 3월 3일
평론
문학과 정치―우리는 웨 정치에 관여하는가
한성일보
1946년 2월
단편
시대일보
1946년 3월 25일
평론
작자의 말
현대일보
1946년 3월 27일 ~ 7월 29일
長篇
不死鳥
현대일보
연재중단됨
1946년 5월
평론
情熱과 知性
민성6
1946년 5월
장편
세 동무
범문사
개제됨
1946년 7월
평론
國語에 대하여
대조2
1946년 7월
문학론
尙虛文學 讀本
백양사
1946년 8월
단편
解放前後
문학
1946년 11월
장편
思想의 月夜
을유문화사
1946년 11월
평론
文學家同盟 여러분에게
문학2
1947년
단편집
解放前後
조선문학사
1947년 4월
수필
붉은 광장에서―소련기행
문학3
1947년 4월
평론
영웅적 활동은 승리로 극복한다
문학3
1947년 5월
기행문
蘇聯紀行
백양당/북조선출판사
1947년
단편집
돌다리
을유문화사
1947년
단편집
복덕방
을유문화사
1948년 8월
장편
農土
삼성문화사
1948년 12월
단편
첫전투
문학예술4(문화전선사)
1948년
문장론
增訂 文章講話
박문서관
1949년 2월
장편
新婚日記
광문서림
개제됨
1949년 11월
단편
아버지의 모시옷
「첫전투」에 수록
1949년 11월
단편
호랑이 할머니
「첫전투」에 수록
1949년 11월
단편
삼팔선 어느 지구에서
「첫전투」에 수록
1949년
단편집
첫전투
문화전선사
1950년
기행문
혁명절의 모쓰크바
문화전선사
1950년 3월
단편
먼지
문학예술
1952년
단편집
고향길
재일본조선인교육자동맹
1952년
단편
고귀한 사람들
「고향길」에 수록
1952년
단편
고향길
「고향길」에 수록
1952년
단편
백배천배로
「고향길」에 수록
1952년
단편
누가 굴복하는가 보자
「고향길」에 수록
1952년
단편
미국 대사관
「고향길」에 수록
1952년
단편
네거리에 선 전신주
「고향길」에 수록
1952년
단편
두 죽음
미확인
1952년
문장론
신문장강화
재일본조선인교육자동맹
1952년
기행문
위대한 새중국
1988년 5월
전집
이태준 전집 1~14
깊은샘
1988년 8월
전집
이태준 문학전집 1~18
서음출판사
1988년 10월
전집
해금문학전집 1~2
삼성출판사
1988년 12월
선집
북으로 간 작가 선집 3~4
을유문화사
1994년
전집
이태준 문학전집
깊은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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